난 나름 열심히 20대를 보냈어

 

 

우리나라에서 서연고 다음간다는 대학에 입학해서

어학연수도 다녀왔고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대학도 수석으로 졸업했지

학점이 좋아 교직이수도 했고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했고 과외도 했어

아르바이트는 어찌나 성실히 했던지

가는 곳마다 제발 그만 두지 말라고 붙잡을 정도였어

 

공부와 일만 한 것도 아냐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렵다는 대학 절친을 열 명이나 만들어

알게된지 10년차인 오늘도 단톡방에서 수다 떨었지

 

틈만나면 배낭여행을 떠났어

여자면서 겁도 없이 혼자 배낭 들고 

일본, 중국, 동남아, 호주, 유럽 등등10개국 가까이 돌았지

부모님이 부자인 것도 아냐

일본여행 한번 빼고는 다 내가 돈벌어서 간 거야

 

대학원도 들어갔어

로스쿨 의전 이런 곳은 아니지만

나름 전문 대학원이라 2년 가까이 공부해서 들어가야 했고

대신 졸업만 하면 취업은 어렵지 않다는 소리 듣고 들어갔어

 

 

 

 

여기까지만 들으면 뭐야 자랑하는 거야 싶은 사람도 있을 거야

나도 내 20대가 자랑스러워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일했고, 놀았어

 

누가 봐도 나한테 '넌 노력하지 않았어'라는 말은 못할 거야

 

 

 

 

근데 대학원을 졸업한 지금,

나는 미칠듯이 무서워.

 

사회가 무섭고 미래가 무서워.

 

 

 

취업 잘 된다고 해서 들어간 대학원인데 

결국 로스쿨, 의전 아닌 이상 나오자마자 어서옵쇼 하는 대학원은 없더라고

지금 백수야.

 

몇 달 집에서 놀면서 공고도 안 뜨는 취업 사이트 보면서 지내니

지금까지 나는 뭘 하면서 살았나 싶어.

 

이제 30대가 코앞이라 결혼준비도 해야 하는데

저금은커녕 학자금 대출만 수천만원이야.

 

부모님은 아직 일을 하시지만 늙고 몸도 아프셔.

 

이제 내가 내 인생 책임져야 하는데

사회는 어디서도 나를 원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야.

 

20대 초반과는 느낌이 달라.

 

20대 초반에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있었지만

그래도 단단하고 두꺼운 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20대 후반은 언제 깨질지 모를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야.

 

20대 초반에는 실패해도 재도전의 기회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와서 한번이라도 실패해버린다면 내 인생이 통채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

 

그게 더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어.

 

 

 

 

 

요즘 20대가 힘들고 아파한다고들 하지.

 

이제 막 20세가 된 너희들도 이제부턴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

현실과 싸우며 힘들고 아프게 살아가야 할 거야.

지금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말이야.

 

현실이 실감나는 순간 주변을 바라보면

진흙탕 속에서 코만 겨우 나와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야

 

진흙 속에서 오도가도 못한 채

코마저 잠기면 죽어버린다며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숨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거야.

 

그때 아마 누가 옆에서 이렇게 말할 지도 몰라.

 

"그러게 왜 그 꼴이 될 때까지 노력하지 않았어?

왜 꿈을 찾지 않았어?

왜 꿈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어?"

 

너는 네 꿈과 인생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으니

힘들어 하는게 당연하다는 소리.

 

 

 

 

근데 말이야,

그 소리를 듣고 절대 자책하지 마.

 

 

나를 봐.

 

누구보다 열심히 꿈과 인생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잖아?

 

 

 

 

힘든 건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꿈이 없어서도 아니야.

 

더 나은 미래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프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있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여기까지는 아는 사람도 많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뒤에 어떤 시가 이어지는지 알아?

 

 

 

마음은 미래를 바라니

현재는 한 없이 우울한 것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은 우울할 수 없어

 

토익 점수가 몇 점이 나오든 그러려니 하는 사람이 우울함을 느낄까?

토익 점수를 받고 우울해하는 사람은 그것보다 더 나은 점수를 바라기 때문에 우울한 거야.

 

더 나은 나.

더 나은 행복.

 

마음이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미래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울한 거야.

 

노력은 할 수 있어.

노력은 힘들지 않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그 노력이 보상받는 미래가 과연 언제일지 모른다는 점이야.

 

 

내가 원하는 것이 명확하면 명확해질수록

그것을 갖기 위해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원하는 것이 내 곁에 없는 현실이 우울해지는 거야.

 

 

 

 

남들이 네가 힘들어하는 건 다 네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그냥 비웃어줘.

 

넌 아무 잘못도 없으니까.

 

그저 미래를 보며 노력하고 있을 뿐이니까.

 

 

 

 

 

 

프쉬킨의 시 그 다음은 이렇게 이어져.

 

 

 

모든 것은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20대가 1년도 남지 않은 내 입장에서 20대를 돌이켜본다면

난 참 많이 힘들어했고, 난 참 많이 노력했어.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야.

 

30대가 되어도,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아마 난 힘들다, 힘들다 하며 오유 고민게시판에 익명으로 글이나 쓰고 있겠지.

 

어쩔 수 없어.

난 30대가 되어도,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계속 꿈을 꿀 테고,

계속 그 꿈을 위해 노력할 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고 험한 길을 걷다 지쳐 가혹한 현실에 울먹일 테니까.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프쉬킨의 시를 떠올릴 거야.

 

지금 내 주변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과거 속으로 사라질 테고,

그때 나는 지나가 버린 내 청춘과, 고민과, 꿈과 노력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제목은 20세 꼬꼬마에게 해주는 말이라고 써놓고

결국 나를 위한 글을 적은 것 같다.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나이 따라잡을 때까지

실컷 힘들어하고 실컷 고민하고 실컷 우울해했으면 좋겠다.

 

그만큼 많이 꿈을 꾸고,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남들이 뭐라고 비웃고 손가락질 하든,

내 과거와 미래에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현재를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